반도체 호황의 역설…예상 밖 '원화 약세' 재료 된 성장 견인차
  • 일시 : 2026-05-22 08:18:00
  • 반도체 호황의 역설…예상 밖 '원화 약세' 재료 된 성장 견인차



    (서울=연합인포맥스) 신윤우 기자 = 반도체 호황으로 수출이 급증하고 경제 성장세까지 가팔라지고 있지만 '원화'만 역풍을 맞은 모양새다.

    경상수지 흑자와 높아지는 성장률 모두 원화 강세를 유발하는 요인인데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도체발 국내 증시 급등을 차익실현 기회로 보고 투자 자금을 대거 회수하다 보니 원화를 짓누르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수출은 527억달러로 전년 대비 64.8% 늘었다. 역대 최대 규모로 반도체 수출이 무려 202.1% 폭증한 결과다.

    최근 한국 경제와 수출, 증시는 반도체 단 하나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 경상수지 흑자는 373억3천만달러로 역대 최대였고, 4월 수출은 858억달러로 2개월 연속 800억달러를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1년 전만 해도 2,000대였던 코스피 지수는 최근 사상 최초로 8,000을 상향 돌파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 랠리 덕을 톡톡히 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2.5%로 큰 폭 상향 조정한 가운데 국내외 연구기관과 투자은행들이 앞다퉈 전망치를 올려잡고 있다.

    통상 성장에 대한 기대와 수출 증가, 경상수지 흑자, 코스피 랠리는 원화 매력도를 높이는 원화 강세 재료다.

    하지만 5월 들어 원화 가치는 줄곧 내리막이다. 지난 7일 장중 1,440원대까지 떨어졌던 달러-원 환율은 최근 1,5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화 약세, 즉 달러-원 환율을 상승세로 이끈 것은 전례 없는 규모의 외국인 투자자 주식 투매다.

    지난 7일 유가증권시장, 코스닥, 넥스트레이드에서 도합 7조8천억원 규모로 주식을 내던진 외국인은 전날까지 11거래일 연속으로 주식을 팔아치웠다.

    전날을 제외하고 10거래일 연속으로 조단위 주식 순매도가 나타났으며 이 기간 누적 순매도 규모는 50조원을 넘어섰다.

    다양한 대내외 변수가 존재하는데도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매일 같이 이어지고 있어 달러-원 환율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외국인이 이처럼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는 배경으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이 거론된다.

    코스피가 단기 급등한 데 따른 투자 포트폴리오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차익 실현이 이뤄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연일 주식을 매도하고 있는데도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 비중은 작년 말 32.9%에서 지난 15일 기준 36.6%로 되레 늘었다.

    리밸런싱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원화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연합인포맥스 통화별 등락률 비교(화면번호 2116)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식 매도를 본격화한 지난 7일 이후 원화는 달러화 대비로 3.45% 떨어졌다.

    주요 통화 중 최대 하락률로 유로화(-0.90%), 엔화(-1.34%), 파운드화(-0.88%), 스위스프랑화(-0.81%), 캐나다달러화(-0.82%), 스웨덴 크로나화(-0.80%), 호주달러화(-0.76%), 뉴질랜드달러화(-0.99%) 등과 큰 차이를 보이는 낙폭이다.

    강달러 흐름 속 한국의 성장 전망이 밝은데도 원화 가치가 유독 많이 떨어진 이유를 외국인 주식 매도로 인한 수급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결국 반도체 호황이 외국인 주식 매도를 촉발해 원화를 약세로 이끄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된 셈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반도체 수출 호조가 원화 강세 재료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약세 재료가 됐다"면서 외국인의 조단위 매도 패턴이 반복될 경우 환율이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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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이런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점이다.

    게다가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고금리 추세가 심화하고 있어 외국인에게 또 다른 주식 매도 명분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감돈다.

    외국인이 주식 현물을 매도할 뿐만 아니라 코스피200지수 선물 등을 대거 매도하는 모습은 이런 불안감을 키운다.

    외국인은 전날 주식을 4천600억원 규모로 순매도하는 데 그쳤지만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1조3천800억원어치 내던졌다.

    주식을 2조7천억원 순매도한 지난 20일에도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3천400억원 규모로 팔았다.

    현선물 모두를 내다파는데서 외국인 매도의 성격이 변화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김세빈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선물은 현물과 달리 미래의 가격 상승, 하락에 베팅을 하는 것"이라며 "현물과 함께 코스피200지수 선물도 순매도를 한다면 외국인의 이탈 사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외국인 주식 매도의 표면적 배경이 리밸런싱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중동 분쟁 장기화와 고유가, 주요국 중앙은행 긴축 우려가 유발한 금리 상승 압박이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금리 상승으로 증시가 재평가될 가능성을 반영해 주식 투매가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미국 장기 국채 금리 급등으로 외국인 주식 매도세의 성격이 달라질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고유가 및 물가 불안 지속으로 미 금리 상단이 추가로 열릴 경우 글로벌 투자 심리 위축과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외국인 주식 매도에 따른 달러 수요에 더해 안전자산 달러 선호까지 동반되면서 달러-원 환율 상방 압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yw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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